청령포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종의 유배지,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그 다음해인 1446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됨으로써
상왕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남한강 상류에 3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섬과 같은 곳으로
주변에는 우거진소나무의 숲이 있고, 관음송은 그 소나무 숲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했으며,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그 해 뜻밖의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니 단종은 영월 동헌의 객사로 처소를 옮겼다.
지금 청령포에는 단종 유배시에 세운 금표비(禁標碑)와 영조때 세운 단묘유지비(端廟遺址碑)가 서있어 옛일을 전하고 있다. 또한 망향탑, 노산대, 관음송이 있다.
수백 년생의 거송들이 들어 찬 수림지로 단종의 유배처를 중심으로 주위에 울창한 송림을 이루고 있다.
청령포 바로 뒷산으로 일명 刀山이라고도 하는데 청령포에서 솟아오른 암벽으로 된 이 산은
6개의 작은 봉을이루고 있어 육륙봉이라고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육륙봉은 어찌 보면 톱날과 흡사하다.
단종어가
2000년 4월5일 단종문화제와 때를 맞춰 건립된 단종어가는 승정원일지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나름대로 재연했다.
어가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 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사랑채가 있으며 밀납인형으로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가 담장 안에 유지비각이 위치해 있다.
단종이 머물던 본체
어가 담장 안에 유지비각이 위치해 있다.
시종의 모습
단종의 모습
단종의 의복
청령포에는 단종 유배시에 세운 금표비(禁標碑)
이 비석에는 동서삼백척 남북사백구십척차후니생역재당금)이라 기록되어 있다.
청령포에서 동서로는 삼백 척을, 남북으로는 사백 구십 척 안에서 금표나 금송에 대한
채취 금지항목으로 일반인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로 세워진 것이다.
관음송
청령포수림지에 위치하고 있는 소나무로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으며
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종 遺址碑閣(유지비각)서편에 서있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는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단종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으며(觀),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音)는 뜻에서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리어 왔다.
청령포 뒷산 층암절벽 위에 있는 탑으로 단종대왕이 유배생활을 할 때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흘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탑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 67-1 청령포 매표소 : 033) 370-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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