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사의 말사인 파계사는 신라 애장왕 5년(804년) 심지왕사가 창건하였다.

절의 이름은 절의 좌우 계곡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9군데나 되므로

이 물이 흩어지지 못하게 잡아 모은다는 뜻에서 파계사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숙종 대왕이  파계사의  영원선사에게  백일 칠성기도로 왕자를 빌게 하였더니,

숙빈 최씨에게 태기가 있어 이듬해 갑술(1694년) 9월 13일에 영조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숙종은 파계사를 숙빈궁의 원찰로 하여 내탕금 3천냥으로 칠성전을 짓게 하고

영조 11세(1704년) 때에는 친필로 자응전이란 현판을 써 붙이게 하였다고 한다.

 

 

 

 

 

 

 

 

 

 

 

 

 

 

 

기영각을 지어 열성 위패를 봉안하게 함으로써 왕가의 원찰로 격상시켜 놓았다.

이후 영조가 등극하자 왕비인 정성왕후는 그 내력을 알고 이 절을 자신의 원찰로 삼은

다음 영조 8년(1732년) 임자에는 영조의 어의를  하사하는 등 각별한 후의를  베풀어 왕실의 원찰로 확고한 지위를 다져 놓는다.
그래서 이곳이 관음기도 도량이 되어 원통전이 중심 전각이 되었던 것이다.

 

왕실의 원찰의 표시가 보입니다.

기와 지붕  가장위 가운데 보면 푸른 빛을 띄는 기와 한장이 있다.

이것이 증표라 한다.

보이시나요? ▼

 

 

 

대구 동구 중대동 7       053-984-4550      http://tour.daegu.go.kr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