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남쪽 기슭 골짜기에 자리잡은 동화사는 493년 신라시대 극달화상이 세운 고찰이다.

그후 832년 헌덕왕자가 중건을 했는데, 겨울철인데도 경내에 오동나무 꽃이 활짝 피어 절 이름을 동화사로 정했다고 전해진다.

대구 경북지역을 관리하는 대한 불교 조계종의 9교구 본사이다.

지금의 동화사는 1732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최근까지도 중건을 거듭해 현대식 사찰의 모습과 예스러운 모습이 뒤섞여 있다.

특히 여름철 동화사는 옛 절의 그윽한 분위기와 울창한 숲, 맑은 물이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리는 동화사 계곡 등이 어우러져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문화재로는 보물로 지정된 동화사 입구의 마애불좌상과 3m 높이의 당간지주,

그리고 금당암 3층 석탑 등 보물급 문화재와 대웅전, 극락전 등이 있다.

동화사 석조약사여래불(높이 17m)은 속리산 법주사의 청동미륵불(높이 33m),

설악산 신흥사의 청동좌불과 더불어 3대 통일대불이다.

 

-가져온 글-


 

 

 

 

 

 

 

 

 

 

 

 

 

 

 

 

 

 

 

 

 

 

 

 

 

 공사중이라 사진이 산만합니다. 죄송~ ^^"

 

 

대구 동구 도학동 35     053-982-0101     http://www.donghwasa.net

 

 

                                                                                    불, 보살, 나한 등이 중중무진으로 계신 것처럼 웅장한 모습이

마치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 정토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 은해사이다.

 

또 은해사 주변에 안개가 끼고 구름이 피어 날 때면

그는 광경이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하다 고해서 은해사라 고도한다.

 

 

 

 

 

 

 

 

 

 

 

 

 

 

 

 

 

 

 

경상 북도 영천시 청통면가 479 번지 054 치일리 홈페이지www.eunhae - sa.org

 

 

 

 

 동화사의 말사인 파계사는 신라 애장왕 5년(804년) 심지왕사가 창건하였다.

절의 이름은 절의 좌우 계곡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9군데나 되므로

이 물이 흩어지지 못하게 잡아 모은다는 뜻에서 파계사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숙종 대왕이  파계사의  영원선사에게  백일 칠성기도로 왕자를 빌게 하였더니,

숙빈 최씨에게 태기가 있어 이듬해 갑술(1694년) 9월 13일에 영조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숙종은 파계사를 숙빈궁의 원찰로 하여 내탕금 3천냥으로 칠성전을 짓게 하고

영조 11세(1704년) 때에는 친필로 자응전이란 현판을 써 붙이게 하였다고 한다.

 

 

 

 

 

 

 

 

 

 

 

 

 

 

 

기영각을 지어 열성 위패를 봉안하게 함으로써 왕가의 원찰로 격상시켜 놓았다.

이후 영조가 등극하자 왕비인 정성왕후는 그 내력을 알고 이 절을 자신의 원찰로 삼은

다음 영조 8년(1732년) 임자에는 영조의 어의를  하사하는 등 각별한 후의를  베풀어 왕실의 원찰로 확고한 지위를 다져 놓는다.
그래서 이곳이 관음기도 도량이 되어 원통전이 중심 전각이 되었던 것이다.

 

왕실의 원찰의 표시가 보입니다.

기와 지붕  가장위 가운데 보면 푸른 빛을 띄는 기와 한장이 있다.

이것이 증표라 한다.

보이시나요? ▼

 

 

 

대구 동구 중대동 7       053-984-4550      http://tour.daegu.go.kr

 

 

 

 

부인사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숭모전(崇慕殿)은 바로 창건주인 선덕여왕을 기리기 위한 전각이며,

그 안에 여왕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아울러 부인사에서는 요즘도 선덕여왕을 추모하기 위한 재를 별도로 지내고 있다.

고려시대 대장각의 판각
부인사의 오랜 역사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사항으로 역시 고려대장경과의 연관성을 들 수 있다.

 고려 현종대에 조성된 고려대장경, 즉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 부인사에 봉안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부인사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초조대장경은 몽고군에 의해 전부 소실되고 말았다.
 
그 뒤 고려에서는 국가적 사업으로 대장경을 다시 한 번 판각하였는데,

고려의 유명한 학자이자 문인인 이규보(李奎報)는 1237년 군신들이 모여 그러한 다짐을 밝히는 성격으로

작성한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가져온 글-

 

 

 

 

 

 

 

 

 

 

 

 

 

 

대구 동구신우동 356       053- 982- 6406

 

 

1288

 

  

신라 41대 헌덕왕 1년(809년) 혜철국사가 해안평에 창건한 사찰이 해안사인데

이 해안사로부터 은해사의 역사가 시작된다.

 현존하는 암자만도 여덟 개가 있고 말사 숫자가 50여 개에 이르고

한국 불교의 강백들을 양성, 교육하는 "종립 은해사 승가대학원"이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주차장에서 사찰까지 소나무가 울창하여

그 향에 취하고 시원한 물소리에 취해본다.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479번지       054- 335- 3318    www.eunhae-sa.org

 

 

1287

 

<대구 둔산동 경주최씨 종택> 옻골마을은 대구시 동구 둔상동에 소재한 경주최씨 (칠계파)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동성촌러거으로 현재 20여 호의 고가들이 어우러져 있다.

 

건물은 조선 인조때 학자 대암 최동집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지은 집이다.

안채, 사랑채, 보본당, 대묘, 별묘, 대문채, 포사, 헛간채로 구성돼 있으며,

종가를 비롯한 다양한 용도의 건물들이 별도의 구역을 갖고 종택이라는 한 공간 안에 존재하면서

고유의 공간을 유지한 채 현존하는 희귀한 예를 갖고 있는 가옥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을입구에 들어서면 최동집 나무가 반긴다.

보호수와 회화나무는 수령 350년의 수십그루가 자라하고 있다.

주변보다 이 터가 높아 금호강 지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나쁜 기운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고자 심었다고 한다.

 

 

백불고택 - 종가

종택인 백불고택은 대구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1982.3.4)된 후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261호로 지정되었으며(2009.6.19),

조선시대(1616년) 학자인 최동집이 세운 모실과 보본당과 사당 등은 4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보본당

사랑채의 동쪽 토담 안에 있는 보본당(報本堂)은 1742년(영조18)에 지은 것으로

재실로 사용되며 구 뒤편에는 가묘와 별묘의 사당(祠堂) 2동이 각각 일곽의 흙담장 안에 배치되어 있다.

 

 

 

대묘와 별묘

가묘와 별묘, 보본당으로 이어지는 조상과 관련된 공간은 양의 상징적인 의미인 동쪽에 배치하고,

이에 비해 생활공간인 안채와 사랑채는 음의 상징인 서쪽에 배치하고 있어 풍수지리 및 음양호행사상을 충실히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대구 지역에 있는 조선시대 주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축물(400년)로 안채와 사랑채, 재실, 가묘, 별묘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주택은

조선시대 양반건축과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수구당 - 사랑채

살림채는 1694년(숙종20)에 지은“ㄷ”자형의 안채와 1905년(고종42)에 지은 “ㅡ”자형 사랑채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붕은 모두 책을 펴서 엎어놓은 것 같은 형태, 즉 八자형 지붕인 박공지붕(일명, 뱃지붕 또는 맞배지붕이라고도 함.)으로 되어 있다.

 

 

 

 

 

 

 

 

정려각

조선 정조임금 때 세자의 인착 (임금의 정사를 도와서 인도)이였던 최흥원 선생의 효자비각 ,

선생의 생존시 효성을 기려 샌생의 사후에 나라에서 세운 정려각이다.

 

 

 

마을 풍경

 

 

동계정

종택 동쪽 개울가에 세워진 이 건물은 최주진 선생의 학문을 기려 세운 정자이다.

자손들의 강학 장소로 이용되어왔다.

 

 

마을 뒷산에는 기이한  바위가 우뚝서 있는데 거북이처럼 생겼다하여 생구암이라 부른다.

골목안에서 바라본  흙담이 정겨운 우리네 고향의 풍경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대구 동구 둔산동 386         053-983-1040           http://tour.daegu.go.kr

 

 

 

 옛 지명은 온계리였다고 하는데 온혜리로 바뀐 것은 최근의 일이라고 합니다.

마을이 온계리로 불리게 된 까닭은 이 마을 부근에 온천이 솟았기 때문인데

그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옛부터 수질이 양호한 온천수가 나왔다고 하네요.

전국의 나병환자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와

이 곳의 유림들이 온천을 묻어 버렸다고 합니다.

 

 온천 근처에 도산서원이 자리하고 

청량산 도립공원이 있어  청량산행을 마치고 들리면 좋을 듯합니다.

 

탕은 소규모로써 마치 시골 목욕탕을 느끼게 합니다.

온천수가 알칼리성 수소탄산나트륨이 성분이라서

온천수에 몸을 담그니 미끌거림과 따끔거림이 느껴집니다.

탕에서는 샴푸 사용을 금한다는 문구가 있더군요.

청소가 잘되어 바닥이 뽀드득거렸답니다~  제가 손으로 밀어 보았거든요. ㅎ

 

드라이기와 수건은 무료로 사용,

7시30분까지 영업한다고 합니다.

숙박은 없고, 주차장은 50대 정도 가능해 보였습니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1034-2       055-856-1335

 

 

 1999년 폐교된 화산 초등학교 가상분교를 기존의 폐교 활용처럼 임대형식이 아닌 매입을 진행하여 

2층의 단아한 폐교건물을 전면 리노베이션을 하였습니다.

 

6000여평의 잔디 조각공원과 함께 야외음악당등의 주변공간과 함께

삼각지붕의 유럽풍 3층건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3개의 층에는 각 4개의 전시관을 갖추고있으며, 자료실, 수장고, 영상세미나실 등 다양한 시설과

관람객의 편의를 위한 아름다운 카페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이 떠나간 폐교건물은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있는 건축가 홍기석씨에 의해

리노베이션 작업이 진행되었고 거대한 지붕과 빔을 이용하여 단아하지만

웅장한 그리고 많은 곳을 숨기기를 좋아하는 스타일의 시안미술관 건물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미술관 건축은 장기 프로젝트로써의 계획을 가지고있으며, 앞으로 별관 전시관, 창작 스튜디오 등

시안미술관의 상징적인 건축물은 점차 그 형태를 드러 낼 것입니다.

 


2010년 7월 17일(토) ~ 11월 14일(일)

목판화, 회화, 설치, 조각 전시합니다.

 

 

 

 

 

 

 

 

 

 

 

 

 

 

 

 

 

 

 

 

<2010년  8월  28일 촬영한 사진>

 

 

경북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649       054-338-9391              http://www.cyanmuseum.org

 

* 평일 : Open 10:30  Close 18:30*  주말, 공휴일 : Open 10:30 Close 19:00

동절기(12월~2월)  평일 : Open 10:30  Close 18:00
*   주말, 공휴일 : Open 10:30 Close 18:30

* 매주 월요일은 정기휴관일이며,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익일인 화요일에 휴관합니다.
   추석, 설 또는 전시 시기에 따라 특별한 경우 별도 공지합니다.

입장료 : 일반인 3000원

 

                                                                                     

전시장내에 음식물을 반입하면 안됩니다.

               

전시장내에서 사진 촬영금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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