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교천리  275-3       063- 564- 2121   http://culture.gochang.go.kr/eupsung/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있는 조선시대 초기의 석축 읍성.

사적 제145호. 둘레 1,684m, 높이 3.6m.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합니다.

숙종 때 이항(李恒)이 주민의 힘을 빌려 8년 만에 완성시켰다는 설과, 1453년(단종 1)에 축조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감옥 또는 원옥>

조선시대의 옥은 대개 관아의 입구에다 짓고 동쪽 칸과 서쪽 칸에

남·여 옥을 나누어 만들고 높은 담을 둥글게 둘러 쳤는데 그래서 생겨난 이름이 원옥이다.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83년에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자료를 참고하여 2000년에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습니다.

 

 

<풍화루>

고창읍성 연못옆에 세운 2층 누각이다.
문헌에는 성내의 빈풍루와 풍화루가 있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건물과 연못은 모두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88년에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자료를 참고하여 풍화루는 1989년에, 연못은 1990년에 원 모습으로 복원하였답니다.

 

 

 

 

 

 

<관청>

관주라고도 하였는데 지방 관아의 주방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던 곳입니다다.
이곳에서는 수령과 그 가족들의 식생활을 비롯한 빈객의 접대와 각종잔치에 필요한 물품의 조달 및 회계사무를 관장하였습니다.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92년에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합니다.

 

 

<장청>

조선시대에는 왕궁과 병영 및 진을 지키는 중앙군인과 지방의 군 · 현을 지키는 속오군 제도가 있었는데

장청은 속오군의 우두머리인 현감과 병방 · 군교들이 군무를 보살피던 청사입니다.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2000년도에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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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교천리  275-3       063- 564- 2121   http://culture.gochang.go.kr/eupsung/

 

 

 사적 제145호. 둘레 1,684m, 높이 3.6m.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합니다.

성벽축성법으로 보아 1573년으로 짐작되며. 동·서·북의 3문(門)과 6치(雉), 2군데의 수구문(水口門)과 옹성(甕城) 등이 있습니다.

성벽은 제법 잘 남아 보존이 잘된 상태라합니다.

이와 같은 읍성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형태로서 행정·군사 시설로 이용 되었습니다.

고창에서는 여자들의 성벽밟기 풍습이 전해내려오는데, 이는 한 해의 재앙·질병을 막는 의식으로 여겨집니다.

 

 

 

 

 

 

성안에 벚꽃나무가 가득하여

4월이면 벚꽃이 만발하고  5월이면  철쭉이 가득 피어 성을 곱게 치장합니다.

7,8월에는  소나무가 시원함을 선물 하기도 합니다.

9월10월은  단풍으로 물들어  고운 장소로 관광객을 행복하게 합니다.

 

 

성터와  변화된 현대식 건물들이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표현하기 어려운 심정입니다.

세월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세월이 흘러 이곳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으려나  하고 상상해 보며 ...

시원한 바람을 느껴봅니다.

 

 

 

 

성을 한바퀴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바퀴돌면 무병장수하며 ,세바퀴돌면 극락승천한다고 한다고합니다.

성을 돌때는 반드시 손바닥만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세번 돌아야 하고 일정한 지역에 그 돌을 쌓아두도록 했습니다.


겨우내 부풀었던 성을밟아 굳게하기 위함이었을 것이고 머리에 돌을 이게 함으로서 체중을 가중시켜 성을 더욱 다지게하는 의도와
성밟기를 한 후 머리에 이고온 돌을 일정한지역에 쌓아놓게 한 것은 유사시 석전(石戰)에 대비하기위함일거란 ....
이러한 민속놀이를 통해 우리조상의 슬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성 앞에 자리한  판소리박물관과 신재효생가를 관람 할 수 있습니다.

성 앞에 주차장이 넓어 편리합니다. 

 

성 입구에 커다란 나무가 자리 하고 있습니다. 마치 수문장인것처럼...

다박솔이란 나무라하는데 고창 성내면민들이 1996년에 기증하였다합니다.

주민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잘 자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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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476-3        061-781-8080        http://www.gokjeonjae.com/

 

본 건축물은 1910년경부터 승주 황전면에 사는

7천석의 부호 박승림이란 분이 明堂을 찾기 위해 십여년을 많은 地官과 함께 수색 끝에

토지면 오미리 環洞(환동)이 금환락지다 확정짓고 李 敎臣(호 穀田:병주의 曾祖父)씨와 함께 건축하게 되었다

그후 박승림씨가 사업상 서울에 거주하고 집은 李敎臣씨가 위임맡고 있었는데

박승림씨가 죽음으로 그의 子婦가 李 敎臣씨에게 인도하여 현재 5代째 살고 있다

 

그리하여 이집을 구례문화원에서 金環洛地(금환락지)라 하고 여러대학 건축학자들이 건축이 잘되었다하여

목포대학 건축과에서 일주일 이상 조사한후 문화적 가치가 있다하여 문화재로 할 것을 신청하였다

원래는 6채 53칸 한옥으로 지어졌으나 중년에 인수당시 동행랑과 중간채를 팔아 훼손되었다가

현재 소유주 이순백께서 1998년1월 새로이 동행랑과 중간 사랑채를 복원하고

누각을 신설하여 "춘해루"라 이름 지었으며(5채 51칸 연못(洗淵:세연)을 확장하였다

구례군청에서 몇 년간 향토문화유산을 선정하다 2003년 문화재관리위원의 심의를 거쳐 구례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2003-9호)

_ 홈페이지에서 _

 

운조루를 관람하고 돌아서는데 눈에 들어온 이 곳을 놓쳤으면 후회할뻔했다.

담쟁이 넝쿨이 겨울을 이기고 햇살을 가득 담고 있는 모습에 잠시 시선을 빼았기고...

 

조용하다...

강아지 한마리가 우리를 반기며 주인 대신 인사한다.ㅎ

마당으로 흐르는 작은 물줄기가 아담하고 깨끗했다.

어찌나 조용하던지 정적이 흐르는 듯...

울 부부의 발자국 소리만 마당을 차지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안주인이신가보네~ " 어서오세요" 하시며 환하게 웃으신다.

 

진작 알았으면 이 곳에서 하루밤 지내고 싶단 아쉬움이 남았다.

 

 

 

 

신혼부부들이 이명당터에서 하룻밤만 숙박을 하면

금환락지의 운을 받아 평생 부귀영화를 누린수 있다는 말이 전해 온다는데

진작 알았으면 신혼여행을 이리로... 이미 늦었으니 구혼 여행을??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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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서내리, 남내리       061- 749 - 3347            http://www.nagan.or.kr/

 

낙안읍성은 1,410m의 석성과 선조들의 정취가 살아있는 280여동의 초가집이 온전히 보전되어 있으며,

90여세대 220여 주민이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는 전국 유일의 옛 도성입니다.
특히, 동편제의 거장 국창 송만갑 선생과 가야금병창의 중시조 오태석 명인이 나고 자란 곳으로

전통 유·무형의 문화가 함께 살아있는 민속의 성지라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낙안읍성에서는 그들의 후예들이 펼치는 판소리가야금병창, 수문장 교대의식을 비롯한

도자기·짚물·한지 공예천연염색, 전통 서당, 농악놀이 체험을 통하여 우리 선조들의 멋과 여유를 느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곳은 국난이 있을 때마다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지켜온 충효의 고장으로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값진 역사와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는 옛 도읍입니다.

-낙안읍성  홈페이지  글-


몇번을 방문해도  다시 찾고싶은 낙안읍성,

이번에도 남편과 찾은 낙안읍성은 아침 공기가 가시기전의 시간이였습니다.

입구에 자리한 식당과 대장간에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연기가 오릅니다.

이른 아침 상을 받고  성안을 둘러보았습니다.

등교하는 여학생, 잔듸 정리를 하시려고 준비중인 관리인 몇분의 인적만 보일뿐...

 

<낙안읍성 입구>

사적 제302호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서내리, 남내리 일원의 마을과

이를 둘러 싼 성곽을 말하며. 보호구역의 총면적은 성내 41,018평(135,597㎡)평과

성밖 50m까지의 26,472평(87,511㎡)평을 포함하여 67,490평(223,108㎡)평에 달합니다.

 

 

 

 

<전통음식 판매점4동>

 

 

 

<임경업 장군 비각(林慶業 郡守 碑閣)>

 문화재 자료(文化財 資料)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노거수>

읍성안에는 3백년~6백년으로 추정되는 노거수(老巨樹)32그루가 있으며

그 중 15그루(은행나무 3, 느티나무 1, 팽나무 6, 푸조나무 3, 개서나무 2)가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특히 곽의 축(軸) 즉 돛대 역활을 한다는 은행나무 두 그루와 객사 뒤편의 팽나무는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받는 낙안읍성의 보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객사(客舍), 동헌(東軒), 내아(內衙),옥사등 관아(官衙) 4동과 낙민루(樂民樓), 낙풍루>

 

 

 

 

 

 

 

 

 

<관리사무소, 낙민관, 자료관, 민속실>

 

 

 

<전시가실등 : 27동, 민가: 231동(초가208, 스레트15, 함석5, 와가3) >

 

 

 

 

<우물>

 

 

<우물>

 우물이 시작되는 곳에 금줄이 쳐 있어 신성함을 느끼게 합니다.

 

 

<도예방>

 

 

<성곽위에서 바라본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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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고흥군 도양읍 도양읍 | 061) 840-0500

 

소록도(小鹿島)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속하는 이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로, 섬의 이름은 그 형상이 작은(小) 사슴(鹿)과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 

 2009년 3월 3일에는 소록대교가 개통하여 육로로도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기원은 구한말 개신교 선교사들이 1910년 세운 시립나 요양원에서 시작되었다.

1916년에는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조선총독부가 소록도 자혜병원으로 정식으로 개원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센병 환자를 강제 분리·수용하기 위한 수용 시설로 사용되면서, 전국의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 수용되기도 하였다.

강제 노동과 일본식 생활 강요, 불임 시술 등의 인권 침해와 불편을 당했다.

 

소록도 병원은 해방 후에도 한센병 환자의 격리 정책을 고수하여 환자 자녀들이 강제로 소록도 병원 밖의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였으나,

이후 한센병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고,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한센병 치료 및 연구, 요양 재생 등을 기본 사업으로 하는 요양 시설로 바뀌었다.

또한 1965년 부임한 한국인 원장으로부터 과일 농사, 가축 사육 등의 기술을 익혀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으며,

일부는 소록도 축구단을 결성하여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완화하였다.

 

소록도는 섬의 전체가 국유지로 일반적인 주민은 거주하지 않으며 대부분 섬 주민은 국립 소록도 병원의 직원 및 이미 전염력을 상실한 음성 한센병 환자들이다.

또한 환자의 대부분은 65세를 넘긴 고령자이다. 환자들의 주거 구역은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도록 차단되어 있다.

(병원의 직원등 환자가 아닌 사람들이 거주 하는 관사지대(소록리 1번지)과 환자들이 거주하는 병사지대(소록리 2번지)로 나뉘며 병사지대는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 되어 있다.)

삼림과 해변이 잘 보호되어 있어서 정취가 뛰어나며, 관광지는 아니지만, 걸어다니면서 섬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길이 잘 닦여 있다.

우체국 도양읍 소록지소 등 관공서와 천주교회, 개신교회, 원불교당 등의 종교 시설, 초등학교 분교 등 교육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2007년 9월 22일부터 5일간 고흥 반도와 소록도를 잇는 1,160m의 연육교 소록대교가 임시개통하여, 육상교통로가 열렸다. 2009년 3월 3일에 정식 개통하였다.

이곳을 모델로 한 소설로는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이 있다. 대략 일제 말에서 1970년대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 다음 백과사전 글-

 

소록도하면 한센병이 먼저 떠오릅니다.

어릴적  상상속의 소록도는 지옥같을거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일반인에게도 소록도가  개방되었고

다리가 개통이 되어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곳이 되었다하니 찾아가보기로했다.

가는동안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다

소록도... 너는 어찌 생겼을까?

 

도착한  소록대교는 길지않은 평범한 다리입니다.

섬주변에 바다의 색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소록대교>

입구입니다.

 

 

출구입니다.

 

 

 

 

<주차장>

다리를 건너면  넓은 주차장이  나옵니다.

방문자들은 이곳에 주차를 하고 도보로 출입이 가능하답니다.

 

<우체국과 마을의 풍경>

 

<병원가는 길>

병원 가는 길에 많은 생각을 하게합니다.

많은 분들이 피눈물 흘리며 지냈던 곳.

가슴이 먹먹해 옵니다.

 

 도로와 나무그리고 병원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병원>

멀리 병원이 보이네요.

 

<성당, 교회, 원불교>

세개의 종교가 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성당을 올려봅니다.

 

 

 

 

 

 

 

 

<소록도 항구일까요?>

예전에 녹동항에서 이곳으로 배가 오가간듯 했습니다.

다리가 놓인 지금  이곳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육지를 그리워했을까 생각하며 한참을 쳐다보게 됩니다.

경찰서만 보이는군요.

멀리 소록대교도 조금 보이고...

 

 <녹동항이  보입니다>

 

<유원지>

조용한 이곳에는 햇살과 모래 그리고 나무가 친구하고 있습니다.

해변이 마음에 든다고 남편은 몇번을 말을 합니다. 말수가 적은 사람인데... ^^*

 

잠시 둘러 본 소록도는 무척 아름답고 조용한 곳이였습니다.

아픈 과거가 묻혀있는  곳에서 잠시 묵념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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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동항       전남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 5325          ☏  061 - 842-6111]

 

 전라남도 고흥 도양읍에 위치한 녹동항은 구항과 신항으로 분리돼 있다.

구항과 신항은 걸어서 5분 거리이며  제주도를 오가는 거대하고 빠른 배들의 정착지이자 집결지다.

신항에 비해 번화한 구항은 녹동항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관광객들이 거쳐 가는 일종의 ‘정류장’이다.

잡은 문어, 오징어, 게, 장어, 서대 등을 어선에서 바로바로 경매장으로 풀어놓는다.

오후 2시에 시작한 경매는 삶의 현장이란 생각을 들게 한다.

경매장에서 거래된 수산물은 바로 식당이나 경매장 앞의 직판장으로 옮겨져 관광객들에게 판매된다.

싱싱한 회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면 직접 회를 떠준다.

2층으로 올라가면  회를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 

야채와 매운탕은 이곳에서 이용하면 된다.

녹동항에서 바라보는 소록대교가 든든하게 버팀목같단 생각을 하며...

갈매기들도 바쁜 녹동항에  내 발자국 남기고 돌아섰다.

 

 

<바다의 삶에서 그들의 모습을 담았다>

 

 

 

 

 

 

 

 

<갓 잡은 쭈꾸미>

 

<오후 2시에 경매가 시작됨>

잡아 온 해물을 좋은 값을 받고싶어하는 어부 마음이 느껴진다.

 

<나도 한몫해야지,  회쎈터에서  자연산으로 ... 흐흐....>

 

 

 

 

 

 

 

<경매장 2층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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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103       싸이트   http://unjoru.com

 

 

조선 중기의 집으로 영조 52년(1776)에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가 지었다고 한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곳은 산과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어 ‘금환락지(金環落地)’라 하는 명당자리로 불려왔다.

집의 구성은 총 55칸의 목조기와집으로 사랑채, 안채, 행랑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는 큰사랑, 아랫사랑채로 나뉘고 주인은 큰사랑채에 거처하면서 손님을 맞거나 손님을 재웠다.

큰사랑채 서쪽에 세 방향이 툭트인 누마루가 있어서 여름거처로 쓰였다.

이 사랑채에 二山樓(이산루) 足閒亭(족한정) 雲鳥樓(운조루) 歸晩窩(귀만와) 등 현판이 걸려있다.

 

 

 

 

 

<사랑채 >

사랑채는 T자형으로 누마루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랑채에는 큰 부엌이 없는데 이곳에는 안채 통로까지 겸한 큰 부엌이 마련되어 있다. 또

한 사랑채와 직각을 이룬 누마루가 있어 전체 살림을 한눈에 관찰하도록 되어있어 특이하다.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 작은(아랫) 사랑채>

 큰사랑채에 잇대 ㄱ자형으로 대문쪽으로 뻗은 아랫사랑채에도 누마루가 있고 이곳을 歸來停(귀래정)이라 한다. 아랫사랑채는 弄月軒(농월헌)이라고도 했다.

 

 

 

 

 

 

< 행랑채>

행낭채는 대문을 중심으로 남쪽 담장 대신 18칸이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헛간과 창고, 마굿간 등으로 쓰이지만 옛날에는 노복들이 살았다.

솟을 대문 동쪽으로 작은문이 있어서 옛날에는 안주인이 출입했다.

 

 

 

<가빈터>

사람이 죽은 후 입관해서 3개월동안 안치해 놓았다 출상했던 장소. 

 

 

<안채>

안채는 사랑채의 오른쪽에 있는 건물로 사랑채에 비해 규모가 매우 크며 평면이 트인 ㅁ자형이다.

중심부분은 대청이며, 좌우로는 큰방과 작은방이 자리잡고 있다.
안채는 사랑채 사이의 중문을 통해 들어간다. 안주인이 거처하며 자식들과 며느리가 산다.

부엌과 찬칸, 곡간, 대청들이 자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행낭채는 대문을 중심으로 남쪽 담장 대신 18칸이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헛간과 창고, 마굿간 등으로 쓰이지만 옛날에는 노복들이 살았다.

솟을 대문 동쪽으로 작은문이 있어서 옛날에는 안주인이 출입했다.

 

 

 

 

 

<곳간채>

 

안채에서 부억을 지나 별당채로 이어지는 ...

 

 

 

 

 

 

 

<사당>

 사당은 안채 동북쪽에 있는 건물로 따로 담장을 둘렀으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별당쪽 마당에는 깊은 우물이 아직도 속을 드러내고 자리하고 있다.

 

 

 

 

 

구례 산수유 축제장에서 승용차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산수유 축제 보시고  운조루 마루에서 제비집을 쳐다보면 어린 날 추억이 새록새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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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매화 축제        홈페이지      http://www.gwangyang.go.kr/maehwa/

 

  • 개최시기 : 매년 3월 초순
  • 개최장소 : 광양시 다압면 섬진마을(매화마을)과 섬진교 둔치
  • 축제내용 : 추모제, 관광홍보관 운영, 매화꽃길 음악회, 매화음식 경연대회,
  •                      매화분재 전시, 농촌체험장, 봄소식전하기, 전국매화사진촬영대회, 매화사생대회 등

     

    옛날에 흙으로 그릇을 만들어 팔아 살아가는 영길이란 청년이 있었다.

    영길이에겐 예쁜 약혼녀가 있었는데 그만 병 때문에 결혼 사흘전에 죽고 말았다.

    영길이는 매일 무덤에 가서 슬피 울었다. 어느날 무덤 옆에 매화나무 한 그루가 돋아나 있는 것을 보았다.

    영 길이는 이 꽃이 죽은 약혼녀의 넋이라고 생각해서 집에 옮겨 심고 그 꽃을 가꾸며 사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더구나 약혼녀가 죽은 후부터는 왠지 그릇도 그 모양이 슬퍼하듯 찌그러져 잘 팔리지 않아 고생은 점점 심했다.

    세월이 흘러 영길이는 늙고, 매화나무도 자랄 대로 자랐다.

     

    명절마다 매화나무를 꽃 그릇을 새로 만들어 옮겨 심고는 산 사람에게 말하듯 내가 죽으면 누가 돌 봐 주느냐고 슬퍼했다.

    영길이는 더 늙어 눈도 잘 안 뵈고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었지만 불쌍한 노인을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 후 동네 사람들은 영길이 노인집 대문이 잠겨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무슨 곡절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서 안에 들어갔더니,

    아무도 없고 영길이가 앉았던 그자리에 예쁘게 만든 그릇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 뚜껑을 열자 그 속에서 휘파람새가 날아 나왔다. 영길이가 죽어서 휘파람새가 된 것이다. 아직도 매화꽃에 휘파람새가 따라 다니는 이유가 여기 있다.

    - 지조와 절개의 매화이야기 -

     

     

     

    다른 해보다 일찍  광양 매화축제를 찾았다.

    날씨가 추워  개화할 생각도 없는 매화들은  꽃망울로  나를 맞았다.

    내 생각엔 3월 말쯤 만개할 듯하다.

     차도쪽에 자리한 매화들이  예쁘게 피어 ,  그나마  난 카메라에 몇장 담았다.

    잎이 피다 얼은듯한 모양이 가득하다. 아~ 어쩌나...

     

     

     

     

     봄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나보다.

    쌀쌀한 날씨에도  꽃축제 나들이 사람들은 즐거운 표정들이였다.

     

     

     

     

    밀양태생으로 올해 68세인 홍쌍리 여사는 45년 전인 1965년 광양시 다압면 섬진마을

    ″밤나무골 김영감님″의 아들인 김달웅(68세)씨에게로 시집와서

    밤나무 1만주, 매실나무 5천주가 심기워진 7㏊의 산비탈 농장 청매실농원을 가꾸고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이다. 

    하지만 홍여사는 몇 년 전부터 ″매실박사 홍쌍리″로 통하는 전국적인 유명인사이다.

     

    홍매화도 날씨가 쌀쌀해 잎이 얼은듯하다.

    예쁜 모습이 안쓰럽다.

     

     

     

    천리향도 한 자태 뽐내고 있다.

    예쁘네~ ^^*

     

     

     

     

     

     

    매실은 매화나무의 열매이며, 그 원산지는 중국으로 되어있다.

    우리나라에는 약 천 오백년 전에 들어와 우리의 선조들이 수백년 전부터 이 열매를 식용 또는 약용으로 사용하여 왔다.
    온대과실로써 중부이북의 매화나무는 꽃은 피지만 열매를 맺지 않는 특성을 보인다.

    최근에 매실음료와 매실을 이용한 전통매실 반찬등으로 사랑을 받고있다.

     

     

     

     

     

     

     


    꽃은 피고

    사람들은 꽃축제에 정신없이 들떠있지만

    말없이 조용히 흐르는

    변함없는 너는 섬진강이였구나.

     

    행사장에 에드벌륨이 하늘에 꽃으로 피어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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